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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28 13:08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글쓴이 : admin1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림산 벳바게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마21:1-3)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겠다 하실 때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자체가 나를 위한 것이다.
내가 생명을 누리는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지 아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사용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거창하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래 바쳐라 너를 위해서’라 하신다.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이다.
여기서 나귀는 쓰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귀를 사랑하셔서  구원 받는 역사이다.

나귀의 특성은 매인 것이다. 우리는 전부 매인 자들이다. 묶인 자이다.
묶인 자를 풀어 주시는 것이 주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는 주님이 나귀를 타고 갔다고 하지만 주님의 입장에서는 나귀와 동행하신 것이다.
우리를 묶임으로부터 풀어주시고 함께 동행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에 매여 있다.
율법의 매임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은 사망 뿐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죽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율법에 대해 죽는 것이다. 율법은 내가 무엇에 매여 있는지를 알려 준다.
형제를 보고 용서가 안된다면 당신은 미워하는 마음에 묶여 있음을 율법이 알려 주는 것이다.

율법은 이렇게 내가  나의 충동, 나의 감정, 나의 자아에 묶여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율법은 알려 주면서 둥시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사망을 선포한다.
산상수훈도 이렇게 우리에게 사망을 선포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한 것 앞에서 묶여 있는 자이다.
죄를 만들어 내고 있는 자신에게 묶여 있는 자이다.  매여 있는 자이다.

갑자기 속상한가? 왜 상처를 받는가? 자신에게 묶여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초월된 자, 자유한 자는 그렇게 상처입지 않는다.
너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 입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원하고, 인정받기 원하는 욕심이 있다.
우리가 그 욕심으로부터 자유하면 누가 뭐라든 상처입지 않으며 바르게 살아간다.
결국 상처는 그런 말을 한 그 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신에게 가하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가장 큰 적은 내 안에 있다. 우리가 바로 묶여 있는 나귀인 것이다.
우리 안에 많은 목적과 비젼을 사명이란 이름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엄청난 우리의 욕심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비록 욕심 많은 죄인이지만 자유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 욕심을 소망으로 둔갑시키지만 소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기 전에는 묶여 있는 자들이다.

우리의 묶임은 우리의 사망적 실존인데 이 사망의 자리가 바로 그리스도가 찾아오는 자리인 것이다.
나귀가 묶여 있는 자리야 말로 그리스도가 찾아오는 자리가 되었다.
묶인 나귀가 어떻게 그리스도께 가겠는가?
그분은 제일 먼저 우리의 사망의 자리, 묶임의 자리로 찾아오신다.


그래서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순간 제일 먼저 묶여 있는 당신을 부르신 것이다.

할렐루야


마태복음강해 100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