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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03 12:59
거친 들에 있는 그대여
 글쓴이 : admin1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아8:5)




한 사람의 생애를 보면 세 가지의 과정을 겪습니다.

애굽에서의 삶, 광야의 삶 그리고 가나안.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애굽에서 광야로 넘어 올 때

그들이 특별히 한 것이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아픔만을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어 홍해를 건너게 됩니다.

홍해를 건너는데 그들의 발에 물이 하나도 안 닿았습니다.

그들은 아직 법 앞에서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법을 줍니다. 법을 준다는 것은 분명

너는 내 백성이다, 너는 나의 소유이다는 뜻입니다.

즉 법을 받았다는 것은 법을 주신 분과 내가 관계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그 주어진 법 때문에 나는 늘 그분 앞에 죄인이 됩니다.

선악과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사망적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쓸데 없이 선악과는 만드신거야?”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주 쓸데 있어 선악과를 만드신 것입니다.

즉 내가 누구냐를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법을 받고 사망을 경험한 사람들이 결국은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가나안은 그 과정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요단강에서는 발이 물에 닿습니다.

이것은 말씀으로 내가 죽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의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율법에 대해서 죽을 때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의 죽음에 찾아오셔서 생명이 되십니다.

부활이 되십니다. 우리의 죽음에는 늘 부활이 찾아옵니다.

물에 들어가 발이 잠길 때 죽음을 경험하지만 물에서 나올 때

요단강이 갈라지고 물이 발에 닿지 않습니다.

부활된 몸으로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 된 새로운 정체성으로

가나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사는 순간부터 우리를 환영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연단, 전쟁, 핍박, 환란… 광야에서는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광야에서는 존재적으로 배고픔과 갈급은 있었지만

환경적으로 치러야 할 전쟁이나 환란이나 핍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의 삶은 늘 연단의 연속입니다.

왜냐면 내 안에 말씀이 들어 오시고 부활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내 삶 전체를 차지하면서 그분이 내 생명의 실제가 되기 위해

정금처럼 되는 과정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광야로 올 때 은혜였다면 광야에서는

우리로 저 거친 들을 경험케 합니다.

오직 그분만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광야는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는 과정입니다.

결국 그분이 내 안에 오셔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 나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애굽에 갔다 옵니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번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 주시고

하루에도 수십번 광야에 있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에 의해  끊임없이 죽는 경험을 하므로

내가 죽고 그분이 사는 일을 오늘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거친 들에 서 있는 그대여,

신실하신 하나님의 열심이 결코 당신을 놓치 않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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