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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12 14:05
이를 갈면 대체할 이가 없습니다
 글쓴이 : admin1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 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22:8-13)




성경을 단편적으로 읽으면 이 사람은 옷을 안 입어서 내쫒겨

지옥에 갔다 이렇게 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을 자기로 대입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청함을 거절한 사람도 나이고 또 만나는대로 옷이 입혀진 사람도 나이고

옷을 안 입은 사람도 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을

결박과 어두움과 이를 갊이 있게 하십니다.

성경에 어두운데서 이를 간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옷을 안입었다는 것이고

옷을 안 입은 것이 결박된 것이고 어두운 것이고 이를 가는 상태인 것입니다.




사람 마다 자기 옷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옷이 귀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한 행실과 지금까지 주를 위해 하늘에 쌓아 올린 공덕으로 짠 옷이기에

그 옷의 실존이 결박과 어두움과 이를 갊이란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분이 현재 네가 입고 있는 옷이 이런 것이고

현재 너의 상태가 이것이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징계입니다.




이를 가는 것은 원망입니다. 모든 환경과 사람과 사건에 대한 원망입니다.

그런데 이를 가는 것으로 제일 무서운 것은 후회,

땅을 치고 앞으로 잘해보겠는 후회입니다. 이것은 이를 박박 가는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데려온 군중들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할 때 양심에 찔려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며 다음에는 제대로 돌을 던지는 자가 되기를 결심합니다.

그들은  후회와 작정을 합니다. 앞으로 나는 저 여인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이를 갑니다.



잘 해보겠다는 이 작정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를 갈면 대체할 이가 없습니다.

결박되고 어두움에서 이를 가는데 그럼에도 내가 지은 이 옷이

내게 너무 선하게 보입니다. 그 옷은 목적과 사명과 소신과 비젼이며

성경 지식들로 만들었습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어두움을 가져다 주는 결단과 작정과 다짐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못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은 결국 그리스도로 옷을 입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간음한 여인처럼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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