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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3-17 09:18
[말씀요약]아벨적 실존? 가인적 실존?(아벨과 가인 #1) 2010년10월17일
 글쓴이 : 관리자
 
생명의말씀                                                            10/17/2010

본문: 창세기 4:2-5

제목: 아벨적 실존? 가인적 실존?

이 본문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의문을 갖게 합니다. 왜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셨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으셨을까?
아벨은 양으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곡식으로 드려서 그런 것인가? 누구나 이런 질문을 마음에 갖습니다.

또 하나의 질문이 우리를 따라 다닙니다.
과연 내가 이렇게 살아도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시는 것일까? 나를 받으실까?
물론 성령충만하게 이웃에게도 좋은 일을 하며 기도도 많이 한 주간에는 교회에 나와도 왠지 하나님 앞에 떳떳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일주일간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채 예배 드리러 올 때면 왠지 모든 사람들 중에 나 자신은 예외인 듯 느껴집니다.
과연 그런 느낌이 바른 것일까요?

이 본문은 바로 그런 우리의 신앙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벨적 실존으로 살고 있습니까? 가인적 실존으로 살고 있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도 아니요 곡식도 아닙니다. 즉 어떤 것으로 제사를 드렸느냐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받으셨느냐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입은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표상입니다. 반면 가인은 열납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물 이전에 이미 아벨을 선택하셨기에 그의 제물이 열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로만 받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성경의 인물이 자신이라고 보고 읽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인도 아벨도 모두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가인의 실존으로 살아갈 때도 있고 아벨적 실존으로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하나님과의 열납 관계가 결정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이 흘러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이 있고 가이사의 것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드림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어야 합니다.
아벨은 그리스도를 얻었기에 그리스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가인은 얻지 못했기에 자기의 땀과 수고를 드렸습니다.
즉 가장 필요한 그리스도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아벨을 열납해서 그의 제물을 받으신 것과 같이 은혜란 은혜를 수여받는 피은혜자의 어떠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행동으로 인해 너를 열납한 것이 아니라 네 자신을 열납했다고 하시며 너로 인하여 기쁨을 감추지 못하신다고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스바냐 3:17) 아멘..